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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서 멀어지는 풍경

이선영 (미술비평)

 

손서현의 풍경은 장대하다. 작품 자체가 크다기보다는 그 안에 내장된 시공간의 스케일이 크다. 공간 관계나 서사를 파악하기 힘든 이 풍경들은 미보다는 숭고에 호소한다. 저 건너편의 수평선, 또는 지평선 아래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 같은 장이 펼쳐져 있다. 인적은 없지만, 펼쳐진 풍경이 원시적 자연은 아니다. 거기에는 계단이나 길, 기둥, 원뿔 같은 인공적인 요소가 간헐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것들은 자연화 되기 시작하는, 폐허로 변한 인공풍경 같다, 섬세한 선과 미묘한 색채로 처리되어 있지만 종말론적인 풍경이 겹쳐진다. 단지 생명체가 하나도 안 보인다는 이유뿐 아니라, 이어져야할 길이 곳곳에서 끊어져 있고, 끊긴 단면에서는 체액 같은 물질이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잃어버린 지평선>(2011)은 연결되지 않는 길이 심연 위로 솟아오른 기둥에 얹혀있다. 마찬가지로 계단, 광장 등이 공중에 둥 떠 있다. 

 

수평적 연결과 달리, 수직적 연결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다층적 표면은 종유석, 또는 열주 같은 수직적 형태로 이어져 있곤 하지만, 그것들이 어디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손서현의 작품에는 지평선이 잠재되어 있지만, 2011년에 열린 개인 전 ‘parascape, 잃어버린 지평선’처럼, 작품 내의 복잡한 층위들은 풍경의 수평적 기준점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바다나 사막 같은 풍경이 떠오른다. 바다 또는 사막 같은 원초적 시공간에서 사물의 고유색은 제멋대로 변형되어 있으며, 지상에서는 폭발이 천상에서는 계시의 빛이 출몰하곤 한다. 바다로 뚫린 울퉁불퉁한 길이 있는 작품 <parascape>(2011)처럼 하늘과 땅, 지상과 지하를 수직으로 연결 짓는 종유석 같은 덩어리들은 손서현의 작품에 종종 나타나는 열주 같은 역할을 한다. 작품 <scene #5>(2010)에서, 회색빛 하늘 아래의 분홍색 대지는 지평선에서 일어나는 폭발로 쩍 갈라져 있다. 

 

작품 <scene #2>(2010)에서는 주황색 하늘 아래의 지평선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쭉 뻗은 길 끝에서 일어나는 폭발은 단선적인 시간의 끝, 역사의 끝에서 도래할 파국적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이 종말론적 비전에서 양 쪽에 빽빽이 깔린 원뿔들은 위기감을 더욱 고양시킨다. 질서 있게 배열된 원뿔들에는 그것이 흐트러지면서 발생시킬 거대한 에너지를 잠재한다. 그 공격적인 형태들로 인해 방사될 에너지는 파괴적일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불안함은 공격적인 도상들의 배치 뿐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환상적 풍경 자체 속에 내재한다. 작품 <scene #4>(2010-11)은 에메랄드 빛 열대의 섬에는 해안가의 운 나쁜 방문자를 관통할 것 같은 촉수가 자라나고 있으며, 작품 <scene #1>(2010)은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는 양쪽의 벽 아래에 원뿔들이 가득 배열된다. 궁극의 의미가 있을 법한 무한 소실점으로의 이동은 곳곳의 음험한 장치들로 인해 방해 받는다. 

 

 

 

실내 역시 수수께끼에 물들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작품 <scene #8>(2011)에서 바깥을 보여줘야 할 고풍스러운 창들은 가득 들어오는 노란 빛에 성상의 실루엣만을 감지하게 할 뿐이다. 거의 대칭형 구도를 가지는 건축적 구조는 바깥 풍경처럼 허공에 붕 떠있고. 건축 자체도 흘러내린다. 풍경들은 단절과 녹아내림 속에서도 어떤 궁극의 지점을 향해 흘러가는 듯하다. 손서현의 작품에서 장대한 무대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는 원근법이다. 그것은 세속 세계를 반영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종교적인 르네상스적인 원근법부터 환타지 소설, 영화, 게임 등 현대의 대중문화에도 자주 등장 하는 가상공간의 원근법을 아우른다. 안 쉬르제의 [서양 무대장식 기술의 역사]에 의하면, 고대의 무대장식 기술로부터 태어난 원근법은 이상적으로 정리된 세상에 대한 재현을 보는 장소였다. 원근법으로 된 허구의 이상적 모델은 반영효과에 의해 관객에 의해 조직된 세상의 질서를 가리킨다. 

 

그러나 불연속적인 층위, 갈수 없는 길로 뒤죽박죽된 손서현의 풍경은 재현의 질서를 흩트리고, 현실과 다르지 않은 재현의 세계인 사실주의와도 거리를 둔다. 질서 잡힌 세계를 위한 틀인 원근법에서 물려받는 요소는 모종의 사건이 펼쳐지는 무대적 요소이다. 일련의 환상이 연출되는 한정된 무대를 무한으로 열어놓는 것은 원근법에 잠재된 소실점이다. 소실점은 무한을 상징한다. 무한에 내재된 초월성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이 신비는 파국 전야 또는 이후의 죽음 같은 고요 또한 내포한다. 손서현의 그림에 내재된 광대한 시공간적 지평은 무한한 지속을 연출한다. 곳곳에 단절과 방해가 있지만, 인적 없는 풍경에는 길들이 나 있다. 작품 <scene #1, 2>에 나타나듯, 아우토반처럼 지평선을 향해 속도감 있게 쭉 뻗은 길도 있다. 무한 속도감의 끝은 무엇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scene’, ‘parascape’ 등의 제목이 붙은 손서현의 작품은 관객을 신비로운 무대장치(mis-en-scene)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그림에 고유한 추상적인 현재성(presentness) 대신에, 현존성(presence)을 고양한다. 무한하게 펼쳐진 전망 속에서 포착되는 것은 덧없는 시간성이다. 풍경들은 사막지대를 횡단하는 운전자나 게임 중의 게이머의 시야처럼, 다가오면서 곧 멀어진다. 그것은 몰입(absorption)의 체험을 낳는다. 몰입의 체험은 마이클 프리드가 [미술과 사물]에서 언급한 토니 스미스의 체험에서 잘 알려져 있다. 토니 스미스는 뉴저지의 미완성 유료도로를 밤에 차를 타고 달리면서 예술이 아닌, 인공적 풍경들에 대한 강렬한 체험을 한다. 그것은 틀 지워진 예술이 해낼 수 없는 효과였다. 여기서 대상을 대신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무런 대상도 없이 무한하게 계속되는 접근, 돌진, 혹은 원근감이다. 그것은 일종의 인공적이면서도 비 건축적인 배치이다. 프리드는 몰입의 체험을 낳는 연극적 예술로 미니멀리즘의 예를 들지만, 그것은 초현실주의에서도 찾아진다. 

 

수수께끼 같은 전망이 펼쳐져 있는 손서현의 작품 역시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있다. 미니멀리즘이나 초현실주의 예술에서의 감각의 정수는 무한성과 지속성이다. 프리드는 깊이를 가진 공간에서의 체험을 통해 초현실주의, 가령 달리, 기리코, 마그리트, 탕기의 회화와 미니멀리즘을 연결시킨다. 둘 다 두드러진 현존성의 효과를 연출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연극적인 효과, 즉 양자가 모두 대상과 인물을 상황 속에 배치하고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밀폐된 방과 버려진 풍경 등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순간에 파악할 수 있는 현실, 또는 형식의 명확한 단면이 아니라, 반복해서 해석해야 하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손서현의 작품에서 원근법이 이어지지 않는 길을 총괄적으로 싸안는 무대를 마련해주었다면, 2012년에 열린 ‘shift’ 전의 작품 <shift scene #8>(2012)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강조된다. 통로는 마치 종교처럼 분리된 차원을 연결시켜 준다.         

 

 

[출전] 아티스트-큐레이터 1: 1 토크 프로그램(브레인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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